디펜시브 윙어의 시작, 박지성


축구평론가 마이클 콕스는, 2019년 은퇴하는 아르연 로벤의 축구선수로서 일생에 대해 글을 썼는데. 글 서두에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을 던졌습니다.

 


 아르연 로번이 PSV있던 시절에 팀내에 윙어 셋은 흥미롭게도 90 00 10년대 각각 시대가 요구하는 윙어의 표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들이였다고 했습니다. 


 일단 첫번째로 언급한 윙어는 데니스 롬메달이었습니다.




 데니스 롬메달은 1990년대, 아니 20세기 전체 윙어 그 차체였다고 했습니다. 100미터를 11초에 달릴 수 있던 데니스 롬메달은 442 내지는 433에서 오른쪽 윙어에 위치했던 선수였습니다. 터치라인 가까이서 빠르게 돌파하고 미드필더가 내주는 패스를 받은뒤 크로스를 올리는 행위를 경기내내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윙어들이 20세기 내내, 1990년대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요샛말로 클래식 윙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르연 로번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윙어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콕스가 말하길 2010년대는 인버티드 윙어의 시대이고 아르연 로번은 모범적인 인버티드 윙어 그자체라고 했습니다. 아이러니에게도 psv시절 로번은 왼쪽에서 자주 뛰었으며 지나칠정도로 라인따라 직선적으로 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점차 성장하면서 우측으로 포지션을 이동했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로벤의 메크로식 플레이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00년대를 대표하는 윙어 스타일을 마이클 콕스는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바로 Defensive winger였습니다. 그리고 이 디펜시브 윙어의 창시자로서 대표자격인 인물로 박지성을 꼽았습니다.





(박지성을 언급하는 칼럼 부분)

 

수비형 윙어, 이 포지션은 어떻게 탄생했던 것이며 박지성은 수비형 윙어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일까요.



일단 수비형 윙어가 탄생하게 된 계기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공격적풀백의 등장과 둘째 압박축구의 유행 이 두가지 원인이 수비형윙어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과거의 풀백은 수비적인 역할로 한정되어서 생각되었고 많이 인기가 없던 포지션이였습니다.



 공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풀백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극소수였고, 윙백이라는 포지션이있어서 이 쪽에 위치한 선수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지만 4백에서의 풀백과는 개념과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공격적인 풀백이 활발했던 국가로는 60년대부터 그 전통이 이어져온 브라질과 그에 영향받은 남미국가 일부만 있었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달라졌습니다. 강팀의 기본조건으로 10백을 깨기 위해 강한 양쪽 측면 풀백으로 꼽기도 할정도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는 풀백이 팀의 중심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바로 브라질 출신의 다니 알베스였습니다. 세비야 시절 알베스는 풀백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을 보여줬습니다. 이렇게 공격적인 풀백들이 등장하자 이를 막아내야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둘째 압박축구의 유행 역시 디펜시브 윙어를 탄생시킨 원인이였습니다.



1974년 미헬스가 토탈풋볼을 전세계에 알린 이후로, 축구내에서 역할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었습니다.



 팀 전체가 강하게 압박할때는 모두가 수비수였고 팀이 공을 가지고 득점을 노리고자할때는 팀전원이 공격수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개념은 점점 20세기내내 점점 발전하더니만 2000년대 들어서 공격수들의 공격가담은 축구계에서 당연할 요구사항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수비형 윙어였습니다



 수비형 윙어로서 박지성이 빛났던 순간은 08/09시즌 인터밀란과 상대할때였습니다. 공격 풀백의 당시 상징과도 같았던 선수인 역시 '브라질 출신 풀백' 마이콩을 상대로, 퍼거슨은 박지성을 기용했고 앞서 언급했던 공격적 풀백을 막는 수비적인 윙어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2008/09시즌에 맨유가 사용했던 주된 포메이션은 4231과 442였습니다.


 


그당시 박지성은 최전방에 베르바토프가 나왔을 때 주로 기용됐습니다.


 



 베르바토프는 활동량이 매우 적기로 유명했습니다. 국가대표경기에서 한경기 2km 뛰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정말 적게 뛰는 선수였죠.



https://www.goal.com/kr/news/132/all-news/2009/01/04/1041536/%ED%8D%BC%EA%B1%B0%EC%8A%A8-%EA%B0%90%EB%8F%85-%EB%B2%A0%EB%A5%B4%EB%B0%94%ED%86%A0%ED%94%84%EB%8A%94-%EA%B2%8C%EC%9C%BC%EB%A5%B4%EC%A7%80-%EC%95%8A%EC%95%84



  


 베르바토프는 주로 약간 왼쪽 아래에서 처진 형태로 뛰는 공격수였고 베르바토프가 담당하는 이 공간은 상대에게 가하는 압박이 헐거웠습니다.



 윙어가 공격수의 커버범위 역시도 담당해야했던 것입니다.



 거기다 공격적인 풀백이 대두되는 당시의 흐름에 맞춰서 에브라 역시 굉장히 활발한 오버래핑을 보여줬고 또한 반대편에는 수비가담을 덜하고 공격적으로 전진하는 호날두까지 있었기에 당시 맨유의 공수 밸런스는 공격쪽에 무게감이 많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즉, 당시 박지성은 중앙에서 베르바토프의 소극적인 움직임과 에브라의 적극적인 오버래핑, 그리고 호날두의 전진성이 동시에 나왔을 경우 특유의 활동량을 통해 공수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가디언지에서 최초로 디펜시브 윙어를 언급하면서 박지성을 얘기했던 때가 바로 2009년이였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09/apr/12/chalkboards-premierleague







‘음악과 마찬가지로 축구계 모든 것들은 이미 과거에 이미 있었던 것이지만 현대에 정말 놀랍고 새로운 것이 있으니 바로 디펜시브 윙어다. 그리고 박지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라고 서술했죠.

 

 

 즉 디펜시브 윙어라는 용어의 시작은 박지성과 함께 시작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대에서 박지성은 대한민국의 플레이메이커로서 공격을 지시했으며 PSV시절에도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격수로서 굉장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박지성은 압박축구가 유럽에서 대중화 되던시기 적극적인 압박을 가하는 디펜시브 윙어였습니다. 울버햄튼전이나 첼시전 아스날 전과 같이 동시에 공격이 필요할때는 굉장히 공격에 참여하는 굉장히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박지성 이전에도 수비적인 윙어들은 간간히 이따금식 있었지만, 풀백의 공격적인 성향과 압박축구가 전유럽에 당연시되가던 시기,  작금의 윙어수비가담을 요구하는 모습은 박지성이 초기 선구자중 하나였음은 분명합니다.

 


이상 칼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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