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블로거에서 자이언트킬링까지. 일본의 비선출 출신 전력분석관 인터뷰

출처: https://number.bunshun.jp/articles/-/851228


2021년 일본 축구계 최대 이변은 천황배 2차전이었다. 간사이 지역리그 소속 (5부리그)의 사회인축구팀인 오시아스 쿄토 AC가 J1 리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5대1로 깨부슨 것이다.  그 엄청난 자이언트 킬링 이면에는 축구를 한번도 해본 적없는 분석관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그 어떤 동아리에 소속하지 않았다"고 밝힌 타츠오카 아유미는 축구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라고 했다. 고교 졸업 후 9년간 해외 유람을 거치고 축구 관련 샵에 취직하고 동시에 작성하던 전술 블로그가 관계자의 눈에 띄어 축구 아마추어이자 J3의 후지 MYFC에 분석관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뒤 교토 AC로 옮긴 타츠오카는 앞서 얘기한 자이언트 킬링의 당사자가 되었다.


"경기 전 『 이 시합 이길 수 있다 』라고 하면 팀원들이 전부 놀랐죠. 심지어 감독조차 10번에 1번이라도 이기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저는 10회 하면 3번 정도는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천황배라는 특수한 대회, 특수한 일정,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뒤에도 10번의 3번 정도 가능성이긴 했습니다 "



J1클럽의 공략 법이란?


교토 AC는 J1에서부터 따지면 5번째 리그인 간사이 1부 리그에 속한다. 1부 리그에 소속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는 선수 훈련 환경, 예산, 인기 등 모든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타츠오카에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실은 J3시절 후지에다 때도 J1의 시미즈 에스 펄스를 상대로 4-2로 이긴 적이 있거든요.그 경험이 제게는 있었습니다. .J1의 많은 클럽은 주말에 경기를 마친 다음 주 수요일(미드 위크)에 천황배의 첫 경기를 치릅니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정이죠. .J1경기와 천황배 하부리그인 교토와 경기에서 어느 쪽에서 선수를 아끼고 휴식을 취하겠다고 택하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와의 경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선 어느 정도 로테이션을 돌리고 올거라는 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강행군을 극복하기 위해 선발을 바꾸는 로테이션제도는 축구계에 도입된지 이미 오래다. 실제로 많은 J1클럽이 천황배에서 아래로 경기를 할 때는 멤버를 다운시키고 온다. 그러나 그렇다한들 상대 선발라인업을 완전히 예측하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타츠오카는 주전 예상을 대부분 적중시키고 계획대로 "대량 득점"을 통해 승리했다.


"한달 전에 히로시마 팀이 *리그컵을 치뤘던 걸 주목했습니다. 거기서 어떤식으로 선발을 세우는지, 그리고 교체스타일, 앞서고 있을 때 전해졌을 때 전술의 변화를 다 체크했습니다. 우리팀이 리그컵의 상대보다 전력이 약하다는 걸 전제하면서 11명 중 9명까지는 선발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또한 히로시마와 달리 우리의 전력정보는 상대에게 노출할 것이 거의 없다도 유효했습니다"


*일본리그는 이피엘처럼 기존 컵대회 외 리그컵이 존재합니다.




분석 과정에서 타츠오카는 히로시마의 "아킬레스 건"을 발견했다.


"히로시마 씨는 분명히 중앙 수비수의 숫자가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와의 경기에 나오는 센터백은 대부분 전문 센터백이 아닌 다른 포지션 선수들을 세우고 경기감각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 선수들이면 비록 5부리그 공격수라고 해도 맞붙으면 해볼만하다고 봤습니다. 11명 대 11명의 총력전이라고 빠듯하지만, 우리쪽이 조금더 유리한 국지전으로 몰고가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우선 전반 15분은 지켜내기가 목표였습니다. 실제로 초반 15분은 3실점 정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밀렸는데 겨우 지켰고, 상대에게 초조함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선수들이 잘했죠. 이 다음부터는 목표한대로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기로 결정했고 결국 5-1 대량 득점이 가능했습니다.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졌죠."

 교토 AC은 이어 3차전에서 JFL의 우에루스파 오이타에 1-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내년에는 모든 클럽들이 예의주시할텐데?"라고 묻자 타츠오카는 "그것도 포함해서 고려할 예정이다"라며 웃었습니다.



수수께기에 쌓인 "분석관의 일"에 대해


분석관이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일까.막연한 이미지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직 자리잡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 직종에 대해서, 타츠 오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클럽의 규모나 카테고리에 따라서 다르지만 기본적인 일은 3가지 입니다. 우선은 자기 팀의 분석입니다. 시즌전체 메인 컨셉을 정하고 잘 됐는지 항상 확인하고 끊임없이 디테일을 수정합니다. 2번째는 상대 분석. 상대의 장점을 얼마나 줄이고 어떻게 이쪽의 장점을 살릴 것인지, 감독과 코치와 상의하면서 매주 매주 게임 플랜을 세우고 있습니다.


3번째는 스카우트 등을 포함한 스쿼드 구성입니다. 카테고리 아래 하부리그 선수는 다년 계약을 먼저 하지않습니다. .J1는 시즌거쳐서 많아야 3할 정도밖에 선수 교체는 없지만 지역 리그는 7할 가까이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모처럼 키운 선수가 활약할수록 상위 클럽에 스카우트되는 지역 리그의 특성. 서포터측면에서 보면 슬프기 그지없는지만 타츠오카 와 팀 관계자는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팀으로도 물론이지만 선수 개인도 상위리그를 지향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지역 리그는 성립됩니다. 잘하는 선수가 프로를 꿈꾸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당연한것이기 때문에, 선수가 올라가는건 떠나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1부리그의 팀이라고 같은 유니폼에서 입으면서 팀의 주축이 되지만, 하부리그 카테고리에서 그런 선수가 있으면 『 위를 목표로 하는 생각 없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일본에도 제이미 바디는 탄생할수 있는가?


전 잉글랜드 대표 FW의 제이미 바디(레스터)은 7부 가량의 리그에서 스텝 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최근에서도 6부 해당 리그에서 경력을 쌓은 왓킨스(아스톤 빌라)도 잉글랜드 대표로 선출되는 등 하위 리그에서 단숨에 선두로 올라선 선수는 적지 않다. 타츠오카는 일본에서도 그런 선수가 증가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바디는 7부에서 1부에 갔는데 실력이 그러면 갑자기 자랐는가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복잡한 종목이다. 환경, 동료, 전술이 맞물려서 처음으로 실력이 발휘될 것 일 수 있다.아마 잉글랜드 등 유럽의 하위 리그에는 버디처럼 소질을 가진 채 매장되어 있는 선수가 100명 단위로 존재할 겁니다.



일본에서도 지역 리그에서 소질과 환경이 맞아서 갑자기 뛰어 올라간 선수가 보이고 있습니다.히로시마전에서도 보였는데 1부와 5부, 프로와 논프로 사이에서 차이는 우리 생각처럼 크지 않다.반대로 얼마 전까지 J1과 J2로 활동 하고 있었는데, 지역 리그에서 고전 중인 선수도 종종 있으니까요 "




일본에서 톱 리그까지 "개인 승격"을 완수한 선수는 현재 사간 도스의 정규 GK이었던 박일규가 떠오른다. 그는 교토 AC과 같은 5부짜리 관동 1부 리그부터 타츠오카가 있던 후지 MYFC를 경유, 2019년에는 요코하마 F마리노스의 GK로 입성해 J1우승을 이뤘다.


"당시의 후지는 골키퍼 역시도 패스를 주고받는 축구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키퍼가 패스 실수를 하며 실점하면 다들 격노한다고 하지만, J3에는 강등이 없기에 그 후의 FC류큐 시대까지 박일규는 쭉쭉 발등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다. 그것이 J1의 마리노스가 요구하는 GK상과 부합하며 단숨에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니다. 선수의 실력과 전술이 맞물려서 위로 탁 치고 간 좋은 예네요 .이적 후에 처음부터 그 클럽 축구를 배운다기보다는 전에 해왔던 기술에 걸맞는 전술 팀에 가는 게 합리적이랍니다"







요즘 미토마 카오루와 같이 대학을 간 뒤 일본 대표에 오른 선수가 급증하고 있다. 대졸 선수를 많이 거느린 교토 AC의 분석관으로, 타츠 오카는 대학 축구 수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학 축구도 강호가 되면 J리그 중견 정도의 설비는 갖추고 있고, 츠쿠바 대학은 분석관만 20명 정도 있다고 듣습니다. 혹시 일본에서 제일 분석관이 많은 팀이지 않을까요? 축구의 수준 자체도, 탑의 대학은 J3에 있으면 좋은 승부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높다.그러면서 같은 동료들과 같은 축구를 배우는 것은, 동료 선수 끊임없이 바뀌는는 경우가 많은 프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큰 어드밴티지입니다. 이는 일본 축구의 독특한 육성 문화인거죠. 향후에 대표로 뽑히는 같은 대학 출신 선수는 나오지 않을까요?"




일본대표로 돌아와서, 현재 월드컵 예선에서 고전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타츠오카는 완전히 다른 부분에서 오는 위기감에 대해 말했다..



"현재 예선 순위 2위 근처고, 성적만 보면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제 생각보다 더 졌을 뿐인데 이렇게 비판받는 만큼 대표팀 감독은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토마 선수가 몽땅 넣고 5대 0 점수 나오고 그러면 즐겁지만 아시아 예선도 이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스코어 1점 차로 아슬아슬 하게 경기하고 있지만 그 1점차이가 월드컵 나가는 일본과 다른팀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생각해 대표팀 경기 2시간에만 집중하는 것 자체가 별로입니다. 정말 위기 의식을 갖고 바꿔야할 부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팀 경기는 일본 축구라는 산의 정상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정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 같은 산 중턱이나 저변에서부터 바꿔야 합니다. 가령 독일 대표팀에는 수십명의 분석가가 있습니다. 만약 일본과 경기를 한다하면 경기 전 전력으로 문자 그대로 샅샅이 분석해버립니다. 원래의 실력도 어려운데, 싸우기 전부터 총력전에서 지고 있거든요 "







유럽과 비교하면 일본에서는 분석관의 중요성이 아직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 타츠오카는 전술 면에서 팀을 응원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수의 경기를 보고 있을까?





"엄밀히 따진 적이 없는데요, 아마 하루 평균 5경기 정도, 연간 1500경기는 보는 게 아닐까. 평소에 축구를 보느라 피곤하기에, 휴일에는 취미 삼아 축구 관전을 하고 있습니다.뭔가 선문답 같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올해의 천황배에서 산프렛체 히로시마를 깨고 멋지게 자이언트 킬링을 달성한 오기 쉬운 교토 AC는 간사이 1부 리그에 소속하는 사회인 클럽이다. 이 클럽에서 분석관을 맡고있는 타츠오카 아유미는 J리그 클럽에서 스카우트됐다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타츠오카는 어떤 인생을 걸어 축구를 직업으로 한 것일까?또"아마추어"가 축구계에서 활약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 어릴 때에 축구에 빠져서는 연간 1000경기 정도 보면서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운동 신경이 나빠서 동아리 활동의 종류는 무엇도 안 했어요.고교 졸업까지 오로지 축구 보는 나날이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 타츠 오카는 약 20개국을 유랑하는 축구 방랑의 여행길에 나섰다.그러나 그것은 코치나 감독을 목표로 하는 자신의 경력 때문이 아니라 그저 축구를 보기 때문이었다. 일로 축구에 종사할 수 있다는 발상을 당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축구 관람을 위한 여행이라고는 해도 사실은 백수나 마찬가지였죠.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으고 해외에 축구를 보러 갔습니다. 한번갈때는 관광비자라 대체로 2주에서 최장도 2개월 정도밖에 못지냅니다. 그기간동안 식비와 생활비를 극한까지 깎아서 돈의 대부분을 축구에 쏟아 부었죠. 대체로 9년이라는 기간동안 그렇게 모으고 떠나는 식으로 반복 여행했습니다.




‘축구가 좋다.’ 그 마음을 가지고 그 빈곤한 여행을 반복했다. 게다가 영어도 잘 못햇기에 몸짓 손짓과 간단한 영어 단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이겨냈다.




"유럽에 자주 갔었는데 『 축구 좋아한다면 당연히 남미도 가봐야야지』라고 생각해서 이 생활의 집대성을 한다는 의미로 남미를 2개월을 겪고 그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최남단의 남극의 입구에서 베네수엘라까지 갔죠. 위험한 상상도 많이 했어요. 그런 생활을 하다보면 『 아, 더 이상 가면 위험하다 』라는 것도 직감으로 알게 됩니다. 위험한 장소도 안 보면 그 나라의 풍토와 축구를 진짜 의미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극한까지 밀고 갔습니다(웃음).




< 축구 외적인 내용이라 중간 생략>



번화가나 뒷골목만 아니라 축구장에도 남미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꼈고, 거기서 타츠오카는 축구 전술의 속 깊음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경우 축구는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의 범주인데, 남미는 전쟁입니다. 이전부터 겉핥기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나서야 처음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원정 팀이 경기 전에 분위기를 띄우려고 응원 시작하면 홈 팬이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도 결국에는 불이 붙은 스쿠터를 던지기까지 하더군요.



이런 상태에서는 어웨이의 선수는 제 경기력을 낼 수 없고 심판도 공평하게 휘슬을 불지 못한다.유럽 이상으로 남미에서는 홈 어드밴티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승점을 따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전술은 내용도 의미도 유럽과 다른나라와 달라집니다. 전 세계를 여행하고 현지 문화를 배움으로써 전술 뒤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꾸준한 축구 관람이 주는 이점은’
 

9년간의 방랑을 거치면서 타츠오카는 마니아의 물품을 갖춘 온라인 축구 숍 점장으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취미로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엄청난 문장과 함께 전술 분석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블로그가 화제를 갖게 되었고 J리그 클럽에서 분석관으로 찾게 된다.


"보통이라면 스크롤바의 압박으로 다들 안읽고 넘어갔지만 후지 MYFC대표를 맡았던 코야마 아츠시의 눈에 띄어 현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축구 아마추어인 자신이 J클럽에서 일하다니,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맞을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축구 선수는 계속 축구를 하고 있는 셈 아닙니까?그 점, 나는 선수들이 공을 차는 시간 내내 축구를 보고 있었다. 단순히 관람 횟수라는 의미에서는 제게도 우위인 부분이있었거든요 "



방대한 축구 지식을 무기 삼아 타츠오카는 J리그 무대에 도전했다. 그러나 제대로 공을 찰 수 없는 인간이 주위에 인정 받으려면 역시 시간과 계기가 필요했다.




"경험자가 현장에 있다니 진짜 희귀했죠. J리그 전체에서 아마 일본 최초일 겁니다. 축구도 안해봤고 확실한 배경도 없는 그런 인간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죠. 또한 당시 일본은 분석관이라는 자리 인지도도 낮았기 때문에 감독이나 코치들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분석관의 일 역시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인 만큼 서로가 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코치 감독과 제가 통합이 된 계기는 해외 연수였습니다. S급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하여 당시의 감독 후보가 해외 연수를 갔고, 해외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제가 동행했죠. 해외에서 고생하는 감독 앞에서, 저는 영어도 못하면서 시종일관 당당했고 그 덕분에 감독과 저의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국내와 달리 해외라는 장소가 제게는 일종의 홈어드밴티지가 된거죠. 거기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플레이가 서툴러도 할 것은 틀림없이 무엇인가 있다"


J3중에서도 결코 유복하지 않은 후지에다 MYFC였지만 선수 주급과 이적료를 승점으로 나눈 "재정적 효율"에서는 높은 효율을 보였다. 2016년에는 J3에서 7위에 올랐고 다른 리그 전 클럽을 넘는 효율로 승점을 벌고 있었습니다. 결과를 남긴 타츠오카는 굳이 간사이 1부 리그 교토 AC에 활약의 무대를 옮겼다.



"처음에는 J리그 클럽소속으로 팀을 끌어올리는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끼고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카테고리가 바뀌면 축구는 바뀝니다. 후지에다 시절 이용하고 있던 전술이 교토AC에는 통하지 않고, 개막 후 연패하고 말았죠 . 카테고리가 달라지면서 효과적인 전술의 종류가 달라진 거죠. 기술 수준의 문제도 있지만 또하나로는 환경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장의 피치가 움푹움푹게 거칠고 있을 때는 패스 축구는 못합니다. 경기 일정도 빡빡하고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승격하기 위해서는 리그는 물론 한판 승부의 토너먼트에도 강한 특성까지도 지녀야 했습니다. 그랬기에 승격을 위해 적응해야 했습니다.


환경에 의한 전술의 변화는 바로 타츠오카가 해외에서 배운 것이다. 국내에서만 뛴 선수들달리 색다른 경력과 경험이 타츠오카의 무기가 되었다. 직접 플레이하면서 얻는 경험도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경험은 쌓을 수 있다. 이런 타츠코카 같은 사람이 일본축구에 더 늘어날 수 있을까?


" 유럽에서는 논프로 선수부터 일류 감독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저처럼 블로그가 계기로 코치가 된 사람도 있고, 그 방면에서 확실히 커지고 있습니다. 축구클럽의 일은 과거와 달리 선수 외의 영역에서도 사람을 필요로하는 순간이 오고 있습니다. 일본 축구는 세계의 트렌드에서 20년 늦어지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언젠가는 그러한 시대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인정하듯, 타츠오카 같은 사례는 레어 중의 레어 것이다 .축구 경험은 미천하지만 후지에다 MYFC에 들어가기 전인 타츠오카의 경력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그러나 그래도 타츠오카는 "아마추어들이 축구계에 유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앞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않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아마추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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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고로 번역기 돌리고 윤문을 한터라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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