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부는 밤의 스토크와 투석기 로리델랍

  한때 축구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메시 스토크검증설에 대해 기억하는 분들 계신가요.  사실 이 이야기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외국에서는 cold wet windy night at stork’라는 밈으로 유명한데 이 말은  전 스카이 스포츠해설 앤디 그레이가 호날두는 스토크와 같은 경기장에서 뛰어봤지만 메시는 안뛰어봤고 여기서 겪어봐야안다 라고 발언하면서 유명해졌죠.




농담 같은 얘기지만, 이 춥고 비바람 부는 스토크시티는 그 당시 이피엘에서 꽤나 강팀들을 괴롭히던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거친 스토크시티의 바람을 더 매섭게 만든 것은 델랍의 스로인이었습니다. 

 
오늘 칼럼의 주제는 스토크시티와 델랍의 스로인입니다. 


 축구라는 종목을 가장 대표하는 특징이 있다면 바로 발을 사용해 공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축구의 영어이름은 무려 football이라고 할정도죠. 하지만 이런 축구에서 가장 예외적인 순간이 있다면 바로 throw-in일 것입니다.

이 스로인은 과거 축구가 럭비와 같은 한 종목이었다는걸 상징하는, 마치 사랑니나 맹장 같은 ‘흔적기관’같은 존재입니다.




 어쨌든 축구경기 대부분은 발을 이용해 플레이하는 만큼 스로인의 중요성은 굉장히 저평가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걸 바꾸고 주목받게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로리델랍이었습니다.

로리델랍은 스토크 시티에 왔을 시점 이미 32살에다가 프리미어리그는 더비,소튼,선더랜드를 거치며 200경기나 뛰었던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델랍이 스토크시티에 오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스로인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더비나 소튼 시절에도 그의 스로인은 위협적인 세트피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경우 특히 경기막판에나 중용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스토크시티의 감독 토니퓰리스는 델랍에게 거의 모든 스로인을 맡기겠다고 얘기했고 실제로 팀에서 스로인을 위한 세션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델랍의 스로인 공격은 스토크의 승격 첫시즌인 08-09때부터 매섭게 빛을 발했습니다

 델랍은 0809 시즌 트랜스퍼마켓 기준으로 6개의 도움을 기록했고 이는 스로인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직접 도움외에도 스로인 상황에서 스토크는 많은 득점을 했고 총 24득점을 했습니다. 스로인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득점을 해낸 팀은 이피엘 역사에서 없었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었습니다.

이 델랍의 스로인 기록에 대미를 작성한 경기는 바로 아스날과의 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크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스토크시티는 점유율에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기존 축구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델랍의 스로인 두방으로 아스날을 꺾었고 아스날은 2:1로 패배했습니다. 경기 끝난 후 아르센 벵거는 이정도의 스로인은 불공평할 정도다 라고 얘기했고 스로인을 없애고 발로 차넣으면서 플레이하는 킥인 혹은 드리블인을 도입하자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이 델랍의 스로인은 얼마나 그리고 어째서 위력적이었을까요.

첫번째 요인은 당연히 델랍의 어깨입니다.

 델랍은 학창시절 창던지기 챔피언이었을정도로 어깨가 좋았던 선수였습니다.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놀라울정도로 장거리를 스로인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틴오닐은 델랍의 스로인에 대해 말하길 "델랍의 투구는 30-40m정도를 날라갔으며 시속 60km에 도달할 정도로 엄청났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델랍은  스로인 최대 거리를 날리며 49.73m기록해서 한때는 세계 신기록이었습니다.

 당시 미들스보로 감독이었던 사우스게이트는 ‘우리도 델랍의 스로인을 막기 위한 훈련을 하고싶지만, 아무도 그만한 스로인을 날릴 수 없어서 대비 훈련을 할 수가 없다’라고 밝힐 정도였습니다.




두번째는 스토크시티의 홈구장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의 도움도 컸습니다.

 당시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은 사이드라인과 광고판의 거리가 멀리 있는 경기장이었습니다. 덕분에 로리 델랍은 스로인을 날리기 위해 여유로운 도움닫기 거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도움 닫기 거리가 좁은 경기장에서는 델랍의 스로인이 위력을 가지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아스날이 델랍의 스로인에 패하고 직후 맨유를 만나게 되자 맨유 팬들은 델랍의 스로인을 굉장히 걱정했지만 사이드라인 이후 경사가 있는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델랍의 스로인이 위력이 반감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위력을 노리기위해 헐시티는 광고판을 스토크와의 경기에서는 앞당기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토크시티 선수들의 엄청난 신장과 오프사이드 규칙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스로인 상황에서는 오프사이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것을 노리고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골대에 굉장히 가까이 붙었습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골대 앞을 메운 스토크시티의 선수들은 다들 엄청난 키를 가진 선수들이었습니다. 토니 퓰리스 감독은 축구선수의 재능보다 키와 신장에 집착하는 감독이었습니다. 이게 과하다보니 툰자이와 구드욘센 같은 선수는 교체로 들어가자마자,5분만에 교체로 빠져나오고 더 키가 큰 수비수로 교체되는 해프닝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당시 델랍의 스로인은 굉장히 위협적이고 많은 팀들에게 스로인이라는 상황을 새로운 세트피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뢰네마크라는 스로인 코치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더믹서를 쓴 축구평론가 마이클 콕스는, 피엘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로리 델랍에 대한 내용을 한 챕터에 할애 했죠.

그만큼 로리 델랍은 혁신적인 선수였고 비바람 불던 스토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선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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