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데인 : 현재의 프리미어리그와 아스날을 만든 남자(1)





 데이비드 데인, 일반 축구팬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이름이겠지만 아마 오랜 아스날팬이라면 ‘어떤일’로 그 이름을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아르센 벵거를 아스날로 데려온 그 일 말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데인을 단순히 벵거를 데려온 남자로만 기억하는건, 그가 걸어온 발자취로 봤을때 너무나도 부족한 수식어일 수밖에 없다.





 아스날 fc의 전 부회장이면서 영국 FA협회의 부회장이고 동시에 유럽 엘리트 클럽의 모임이었으며 슈퍼리그 창립하는 조직으로 의심받았던 G14의 회장이었고 또한 피파랑 유에파 여러 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18년 잉글랜드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회장도 역임했다.


 정말 축구계에서 높은 직함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 만봐도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엿볼 수가 있다.그러면 어떻게 데이비드 데인이 이렇게 수많은 축구계 직함을 가지게 되었는지 시작부터 살펴보자.

 데인은 형제와 함께 지역내 성공한 사업가였다. 이러한 사업자금을 바탕으로 그가 축구계에 등장한것은 1983년이었다. 아스날의 16퍼센트 지분을 29만 2천파운드에 사면서 등장했고, 이에 대해 당시 아스날 회장이었던 피터 힐우드는 “정신나간 짓이다. 어떤 부분에서 보더라도 그 돈은 이제 죽은돈이다”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데이비드 데인이 아스날 지분을 인수했을 당시 아스날 리그순위는 10위였다. 그가 제대로 돈을 투자만 했으면 돈 이상의 가치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데인은 아스날을 택했다.


 그리고 이 죽은 돈은 ‘살아있는 돈’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데인은 사업가 시절 자신의 미국인 아내와 함께 플로디아에 머물면서 미국 스포츠를 접했다.


 미국 스포츠 산업의 발달은 80년대에도 어마어마했고 실제로 바이언의 울리 회네스 역시 미국에서 스포츠비즈니스를 배워와서 뮌헨의 자본을 크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보를 데인 역시 아스날에서 걸어나갔다. 영국의 축구는 감소하는 관중수, 창궐하는 훌리건으로 인해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데인이 아스날에 들어온 직후 인터뷰에서 말하길 “ 난 잉글랜드 축구가 미국 스포츠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스타디움은 편하고 가족 친화적이면서 관중들의 흥미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되었다.” 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에서 는 TV가 전부다. TV와 연계된 산업이 없거나 최악이면 그 상품은 실패했다.” 라고 말하면서 빠르게 미국식 스포츠비즈니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데인은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했다.83/84시즌이 시작하자 그는 바로 미국식 선수등장을 도입했다.장내 아나운서가 터널에서 선수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를때마다 선수가 등장하는 형태였다. 이런 가벼운 변화들부터 데인은 시작했지만 이러한 사소한 것들 하나부터 선수들이나 내부에서는 불평이나 반대를 시작했다.



 당시 아스날의 스타였던 찰리 니콜라스는 이에 대해 “난 이런 우스꽝스러운 과장광고 같은 짓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아스날 팀원 한명으로서 등장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 우리에겐 익숙한 경기장내 스크린을 설치했다.


 하이라이트나 경기 리플레이를 보여줬던 이 스크린은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스크린 근처에 있는 관중들에게 너무 시끄럽지않냐고 따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행되었고 아스날팬 심지어 원정팬들 마저도 경기 중 특정 장면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바라봤다. 



 단순히 경기장 내부 경기시청 환경 뿐만 아니라 데인은 경기장 주변 환경도 선수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89년까지 데인은 아스날 지분을 41%까지 올렸고 하이버리 주변지역에도 신경쓰며 아스날 상업매장을 확장하려고 시도했다. 음식등을 사고 먹을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하면서 이를 통한 매출상승을 꾀했다.  6.4m 파운드를 투자하면서 clock end에 부스를 설치할 수 있는 박스를 만들었고 데인은 “21세기를 향해가는 아스날에게는 경영적으로, 외식문화까지도 커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구상이다”라고  얘기했다.



아스날이라는 훌리건들이 난동부리고 경기를 보기싫은 곳에서 점점 런던 내 젊은이들이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핫한 플레이스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 대처 정부의 테일러 리포트가 나왔다.



 힐스브로 참사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정리한 이 리포트는 훌리건의 폭동만이 원인이 아닌 경찰의 입장 통제 실패가 핵심 원인이라고 파악했다. 입석 관람의 폐지와 지정 좌석제 도입을 주장했다.



힐스보로 이전까지 영국 사람들은 입석 응원이 진짜 축구관람이라고 여겼기에 좌석을 잘 앉지않았다. 좌석제가 추진된 이후 한 팬은 데이비드 데인을 향해 “ 스탠드 시발 좆 같은 소리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데인은 이러한 좌석제 추진이 상업적으로 이득을 찬스라 생각했다. 지정 좌석을 통해 축구장 문화를 바꾸고 미국스포츠들이 하는 것처럼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생각이었다.



좌석을 팔아서 16.5m정도 수익이 나올거라고 내부조사결과 나왔다. 문제는 그전까지 좌석은 최악이었기에 새로 바꿔야 했고 추가비용으로 22.5m파운드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자금들은 아스날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데이비드 데인에게 찾아왔다.



 일단 첫번째로 그가 데려온 감독인 조지 그레이엄이 리그 fa더블을 달성하며 19년만에 아스날을 잉글랜드 정상으로 이끌면서 아스날은 일약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클럽중 하나로 올라섰다.




 레플리카 유니폼들을 입고온 팬들이 가방에는 잔뜩 아스날 관련 굿즈를 넣고 경기장 주변 부스에서 파는 나초와 맥주를 먹으며 정말 잉글랜드 최정상을 다투는 클럽의 경기를 보고 하이라이트를 대형 소니 텔레비젼에서 틀어주는 그야말로 신세대를 위한 장소로 아스날 경기장은 변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본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데이비드 데인이 FA 위원회로 들어가던 1986년 한 사람이 솔깃한 제안을 갖고 왔다. LWT의 회장이며 훗날 축구협회장이 된 그렉 다이크는 데인에게 당시 빅5클럽의 대표를 한자리에 모아달라고 했다.

당시 빅5는 리버풀,아스날,토트넘,맨유,에버튼이었다. 

그는 빅5 대표에게 이렇게 말을 꺼냈다.

“당신들은 축구를 통해 아무런 수익도 못올리고 있잖아. TV 방영되고 있는데 이로 돈벌생각은 못하고 있는가? 내가 각 클럽에게 100만 파운드 씩 줄 테니 5클럽에 우리 회사에게 독점 중계권료를 주게”

이를 듣고 데인은 그가 항상 생각하던 TV와 연계된 비즈니스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프리미어리그 출범에 대한 아이디어로 이어지게 된다.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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