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시장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지금 현재의 해외축구를 보는 우리들에게 있어, 이제 현재의 이적시장형태는 매우 익숙하고 당연시되며 이게 마치 오랜기간 지켜저온 전통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시즌기간 내내 여러 이적소식이 나오고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자유롭게 여기저기 링크가 뜨며 7~8월 여름이랑 1월 겨울에 공식 오피셜 발표가 뜨면서 이적이 마무리 되는 형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적시장 형태는 축구 초창기때부터 이어져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7월에 시작되며 8월말에 마무리되는 summer tranfer window, 그리고 1월 1일 열리며 1월 31일 마무리되는 winter transfer window형태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2002년이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선수들이 리그 중간에 계약할 수 있었죠.



물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없이 다양하고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제약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적시장은 변해왔을까요.


오늘 칼럼주제는 이적시장의 역사입니다.



이 이적시장의 역사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총 4명의 남자를 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이 4명이 현재 이적형태를 바꿔버린 남자들입니다.



1. 최초로 돈을 받고 뛴 프로선수들


최초로 소개할 사람은 두남자입니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잉글리시 게임의 주인공

퍼거스 수터와 지미 러브입니다.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축구선수들이 돈을 받고 경기 뛰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스포츠는 순수해야한다는 아마추어리즘이 깊게 자리잡아있었죠.


실제로 이러한 아마추어리즘은 20세기에도 스포츠 전반에 영향을 끼쳐서, 올림픽에 역시 그 아마추어리즘을 바탕으로 프로선수들이 못나오게 했었습니다.


축구 역시도 이러한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상태였죠. 돈을 안받고 선수들이 뛰다 보니 선수들이 이 팀 저팀 옮기면서 여러클럽에서 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풍토가 바뀐것은 1885년 저 두명의 선수가 최초로 정식으로 돈을 받고 경기를 뛰면서 부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돈을 받지않았기에 선수가 팀에 등록되어있을필요도 없었고 여기저기 원하는 팀 매번 바꾸면서 뛰었습니다만, 이제는 선수들이 프로화되었고 점점 전업선수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문제는 이렇게 되면 돈많은 부자클럽들이 선수들을 싹쓸이하고, 또 선수들이 돈받고 여기저기 팀을 옮기면서 뛸 수도 있었기에 축구협회는 선수등록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제도를 영어 원어로는 ‘Retain and Transfer’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문제가 있었으니 선수 계약기간이 끝나도 그 선수 보유에 대한 권한을 기존 클럽이 계속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로 치면 fa제도가 없었던거죠.

그렇기에 클럽이 선수를 보유하고 여기저기 선수와 합의하에 팔던가 혹은 지멋대로 사고팔 수가 가능했습니다.

 

 

2. 선수는 노예가 아니다.


기존 제도에 대해 반기를 들기까지는 무려 70에 가까운 시간이 흘려야 했습니다.


1963년 조지 이스트덤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1959년 뉴캐슬에서 아스날로 이적하고자 해서 뉴캐슬측에 이적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뉴캐슬측은 거절을 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뉴캐슬은 자기들이 소유권이 있다면서 이적을 거부했죠.

조지 이스트덤은 retain and transfer제도는 노예제도다. 우리는 이동할 자유와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훗날 풀럼의 회장이 되는 친구 어니클레이(Ernie Clay ) 밑에서 일하면서 버텼습니다.


선수협회의 도움을 받으며 재판까지 간 이스트덤은 아스날로의 이적을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상황에서도 선수의지에 따라 이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적 중재소가 생기고 선수들에게 어느정도 일정정도 유리한 판결을 재판소가 내준 것입니다.


이제 선수는 더 좋은 조건을 가진 팀에 갈 수 있게 된거죠. ‘이적료’를 낸다면 말입니다.


여전히 계약기간이 끝나도 이적할려면 이적료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 제도 깨지기까지 선수들은 30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했습니다.




3. 축구선수들에게 자유를 가져온 남자, 보스만.


이 보스만이라는 사람은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베켄바우어등 만큼이나 축구계를 바꾼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0년 벨기에 리그 리에쥬에서 뛰던 보스만은 1990년 계약 기간 만료를 눈앞에 두고 프랑스 리그의 덩케르크로 이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덩케르크의 이적료가 만족스럽지 않은 리에쥬는 이적협상을 중단하고 보스만에게 지불하던 주급의 1/4만 지급했습니다.

갑자기 보스만은 원하는 팀으로 이적도 못하게 되고 수입 역시 반의 반토막이 되어버린거죠.

이를 참지못하고 보스만은 RC리에쥬를 고소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벨기에 FA와 UEFA를 상대로 EU 유럽 사법재판소 소송을 걸었습니다.

당시 EU는 1992년 마스흐리트 조약에 서명하면서 유럽 전역의 노동운동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따라서 현재 축구 이적시장의 제한은, 유럽조약 39조를 위배된다고 재판소를 판단했던 것이죠.

결국 보스만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보스만의 승리에 따라서 이제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수는 공짜로 어디든 이동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전까지 각국가간 외국 선수에 대한 쿼터제도가 존재해서 일정숫자 이상의 외국선수들을 보유할 수 없었으나, 이 판결을 통해서 유럽연합 EU내 국가간 이적 역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여러 리그가 대립하던 유럽에서 점점 더 빅리그 집중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신호탄이되었죠.

그 시작은 아약스였습니다. 1995년 평균연령 23살의 젊은 선수들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던 아약스는 보스만 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클럽이었죠.

패크릭 클라이베르트,에드가 다비즈, 미카엘 라이지거, 윈스턴 보가드 같은 자신들의 주축을 다 자유이적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미하엘 판 프라흐 아약스 전 회장은 "보스만룰 도입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리는 클라이베르트를 이적료 없이 AC 밀란에 떠나보냈는데, 그곳에서 성공하지 못 하자 밀란은 1년 만에 12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받고 그를 바르셀로나(바르사)에 팔았다. 정작 그를 12~13년간 육성한 아약스는 돈 한푼 받지 못 했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어땠을까요. 선수들의 권리를 클럽들이 보장해줬다면 저런일이 생겼을가요. 보스만은 보스만 나름대로 선수들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했던 것입니다.

선수들은 그전과 다르게 좀 더 많은 주급을 받게 되고 이적의 자유가 생긴 것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나는 아직도 호날두 베컴 그들 모두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기를 기다리고있다” 라고 말했고 그리고 그는 선수들에게 그말을 들을 자격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4. 보스만이 쏘아올린 공, transfer window, 이적시장 기한제도의 탄생





이제 적극적으로 선수들이 이제 타 구단으로 오고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가만히 냅두면 분명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컸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어느정도 통제할 제도가 필요성을 uefa측에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Transfer window , 이적시장 기한 제도였습니다.


물론 그전까지 어느정도 일정선에서는 이적들이 제한이 있었고, 실질적으로 리그기간동안 이적하는 케이스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세리에 처럼 일부리그들은 이적제한기한이 존재하기도 했죠. 허나 몇몇 구단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잉글랜드 리그의 경우 규정상 시즌내 3월 31일까지 이적이 가능했습니다.

3월 31일까지가 선수등록기간이였기때문이죠.

실제로 에릭칸토나가 리즈에서 맨유로 이적했던 시기는 1992년 11월 26일이였습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저 기간에 이적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시절은 시즌 내내 언제든지 이적할 수 있기에 저 기간에 이적가능했던것이죠.

보스만판결이후로 eu내 자유로운 이적이 가능해지면서 시즌 내내 이적가능한 문제는 중소 클럽과 리그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기에 uefa는 제약을 가하려했고

다른 리그와 합의 끝에 uefa는 2002년, 이적시장은 여름과 겨울 두개가 있다라고 공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던 이적시장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 이후에도 이적시장을 흔들 수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잉글랜드를 흔든 테베즈와 마스체라노의 서드파티문제, 웹스터룰의 변화, 그리고 임대제도의 탄생 등말이죠.


이렇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적시장의 모습은 생긴지 얼마 안된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몇십년뒤에 이적시장은 또 엄청 많은 격변을 겪고 어쩌면 슈퍼리그가 탄생해서 우리가 아는 이적과는 또다른 이적시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 칼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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